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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웹진] 문화의 생산 주체로서의 예술 교육

웹진 지지봄봄 22호 곁봄 | 칼럼 문화의 생산 주체로서의 예술 교육 박도빈 /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공동대표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은 문화예술을 매개로 일상을 나누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문화예술 단체이자 플랫폼이다. 6년째 다양한 형태의 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예술 전공자나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구성원이 별로 없다. 종종 지원사업의 심사과정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예술 활동 경험이 별로 없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날 때 매개자 역할을 하는 데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서 좋은 편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주목받는 예술 교육에서의 경험은 예술은 잘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잘해야만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좋아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닌데, 여전히 많은 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배우고 성장하는데 있는 듯하다. 전업 예술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예술을 좋아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예술 교육이 예술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을까. 동네형들은 그동안 나름대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지만 정작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본인들의 활동을 예술 교육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연습이 아닌, 예술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활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듯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상상한다. 그래서 철가방을 들고 학교로 간다.

학교 벽화는 주로 예술가를 섭외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제작한다. 하지만 정작 그 공간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는 누군가가 그려준 아름다운 그림일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 <<찾아가는 예술 철가방>> 은 참여자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장면을 몸으로 표현하여 시트지로 벽화를 제작한다. 주로 농어촌 소재의 작은 학교들을 찾아가다 보니 전교생 30명 정도의 모든 아이의 모습이 학교 공간 곳곳에 남겨진다. 서로 몸을 대고 그려주면 되니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고 간단한 칼질 후 배경을 떼어내면 작품이 만들어진다. 처음 학교에 도착해서 철가방에 담긴 시트지와 짬뽕 그릇에 담긴 커터칼을 꺼내며 우리는 지금부터 벽화를 만들 예정이고,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될 것이라 하면 아이들은 웃는다. 여러 명의 강사가 소규모 그룹별로 수업을 진행하지만, 기본적인 설명 외에 별다른 개입은 하지 않는다. 미술 수업과는 다르게 눈치 볼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재미없는 학교 공간에 낙서할 기회를 얻은 아이들은 마음껏 떠들고 상상하며 고민한다. 예술적인 재능이나 기술이 필요 없는 간단한 작업 방법은 모든 아이가 최대한 자신의 감각과 표현에 집중하며 능동적으로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공간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바뀌고, 아이들의 이야기는 작품이 되어 공유된다. 예술가로서의 경험으로 부족함이 없다.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동네로 나가면 더욱 자유로운 작품이 가능하다. 익숙한 골목과 건물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공간과 사물을 발견하고 자세히 관찰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영국의 작가 뱅크시(Banksy)처럼 그래피티로 작업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으니 동작을 사진으로 찍어 시트지에 출력해 오리거나, 그냥 잘라서 붙인다. 작품 설치 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공간뿐 아니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경험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예술 프로그램은 주로 창작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하지만, 청년의 경우에는 주로 일상의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충분히 가지는 편이다. 이러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보통 청년으로 살아가는데 예술씩이나 하고 살기에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고, 예술 교육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서로 공감받고 위안을 얻는 데 있어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뜨거운 이슈였던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들과의 예술 워크숍은 정책과 지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문제들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일상적인 고민이 여러 사람에게 공감되는 순간, 그 고민은 작품이 되었다. 매일 같이 쓰는 자기소개서에 절대 쓸 수 없는 단어가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알고 ‘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도록 자판을 뽑아버린 키보드는 전시회에서도 취업준비생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고, 어렸을 때부터 연주하던 첼로를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용기를 내 마련한 첼로의 장례식에는 여러 청년이 함께 향과 국화를 올렸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무 명 넘는 청년들의 내적 변화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시를 마무리한 후의 소감에는 왠지 모를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들이 전시한 작품은 어쩌면 불합리한 세상에 내지르는 큰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두배 청년통장 참여자들과는 예술을 주제로 8개월간의 모임을 운영했는데, 그 과정이 여느 예술 교육 과정보다 좋았다. 모임 활동이다 보니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모임 지기를 담당하여 활동을 제안하고 결정하여 준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초반의 활동 내용은 주로 공연, 전시 관람이나 악기를 배우기, 축제 참여 등 일반적인 예술 체험 정도였으나 모임의 경험이 누적되고 서로 간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부 활동보다는 오히려 모임 내적으로 공동체 영화 상영과 토론, 스터디 등 놀자고 만든 모임이 서로 배움의 장이 되어버렸다. 시작부터 전시 개최를 목표로 시작한 모임이긴 하지만 참여자들 대부분 예술 활동의 경험이 없는 상황이라 전시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전시 공간까지 새로 빌려 전시를 개최하였다. 때로는 좋은 정책이나 지원보다 공통된 관심사 하나가 좋은 복지가 될 수 있다. 그냥 예술에 관심이 있어 모인 사람들에게 예술 활동은 새로운 관계를 생산하는 매개가 되었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친구이자 난생처음 함께 전시한 동료 작가가 되었다. 이 모임은 10월에 공식적인 활동을 종료했지만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에도 지속할 것이라 한다. 예술 교육에서의 경험이 자신 일상과 주변을 변화시킨다고 느낄 때, 참여자는 생산의 주체가 된다. 그것이 공간이든 사람이든 내면이든 혹은 관계이든. 예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일상의 영역은 훨씬 더 다양하고 섬세할 것이다. 예술 교육을 계속 규정하고 정의할 것이 아니라 예술 교육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 예술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현장들로 확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처음 밝혔듯이 동네형들에는 예술 전공자가 없지만 해마다 몇 번씩은 함께 전시에 참여한다. 그동안 진행해왔던 예술 교육의 성과와 가치, 한계를 스스로 객관화하여 말하기에도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계속해서 우리만의 예술 교육을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 우리 스스로가 매개자이자 참여자이고,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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